독서노트(현맨)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현맨 2017. 4. 15. 16:02



알린스키, 변화의 정치학 / 조성주

 

1. 환상의 거미줄에서 빠져나오는 것

 

상대의 생활방식, 문화적 배경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마구 발산해 대는 행동 방식보다, 정치적으로 정리된 언어로 상대를 존중하며 의사소통하고 그 안에서 다수를 끈질기게 설득해 나가야 한다.

 

알린스키 - “세상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서 그것의 법칙대로 일해야 한다.”

마키아벨리 - “사람들이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알린스키 - “이 세상은 순수한 천사의 세상이 아니라 간악한 책략의 세상”, “사람들은 힘의 원리에 따라 행동한다.

 

혁명이란 단어가 주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부정하고, 그 안에서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고뇌를 쉽게 무시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 그런 낭만적 급진주의는 시민들의 열정을 모아 내고 사회구조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됐을지 모르지만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라는 다소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에 길을 잃게 된다.

 

알린스키 - “지평선에는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 지평선이란 영원히 저 멀리에 있을 뿐이며, 우리를 앞쪽으로 손짓해서 부르고 있을 뿐:이다.

 

환상과 과도한 열정에 빠져 있다가 그 환상이 지속될 수 없음에 좌절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환상에 빠지지 말고 체제 안에서 일해 가는 법을 익힐 것. 그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힘든 일. 어쩌면 순간의 혁명적 열기에 몸을 맡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 안에서 우리는 작은 행복들을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고, 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2. 다시 생각해야 할 단어들

 

민주주의는 갈등에 기초한 체제, 정치의 본질은 힘, 갈등, 자기 이익, 위계와 같은 것들이다.

 

(권력), 정치가 속성상 폭력 또는 강제력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운동이라는 것도 결국 변화를 위한 힘을 조직하는 것이다. 힘을 백안시하고 정치를 멀리할수록 대책없는 무질서와 타협없는 갈등 속에 사그라든다.

 

막스베버 - “현대 정치에서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면서 궁극적으로 타인을 강제하는 조직적 물리력을 본질로 한다.”

 

자기이익. 이 단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 공익, 공공선이 더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경향들은 다양한 결사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음. 이는 사람을 그가 존재하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기를 거부하고 우리가 그에 대해 원하는 모습대로 보려고 하는 것이다.

 

타협, 민주주의는 갈등에 기반한 체제이며 그 갈등이 멈추는 순간이 바로 타협하는 순간. 그 타협된 갈등은 다시 끝없이 계속되는 갈등과 타협의 연속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다.

 

알린스키- “조직가에게 타협은 가장 핵심적이고 아름다운 단어

 

타협을 승리나 미덕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현재의 체제가 너무 폭력적이고 불평등한 데 비해 변화의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에 대하 조급증에 불과하다. 동화 속 해피엔딩을 잔혹한 현실에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타협해야 하는 순간을 놓친 채 기약 없이 지속되는 싸움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을 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만나게 된다.

 

흔히 격렬함으로 포장되게 마련인 싸움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타협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진정한 용기와 리더십이 필요한 부분이다. 야합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그 절박한 이해관계와 관련이 없는 구경꾼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타협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야 말로 격렬하고 화려한 싸움보다 어렵고 힘든 것이고, 그 만큼 의미 있는 것이다.

 

갈등, 갈등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알린스키 - “갈등은 자유롭고 개방된 사회의 본질적인 핵심

샤츠슈나이더 - “민주적 삶의 방식을 음악 작품의 형태로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것의 주 선율은 불협화음의 하모니가 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갈등은 무조건 나쁜 것으로 몰아간다. 사회적 약자들의 집단적 저항을 사회혼란으로 치부한다. 이렇게 갈등을 나쁜 것으로만 묘하는 주장들은 대부분 기득권인 경우가 많다. 보통의 시민은 갈등 체제를 통해 공적 사안에 관여한다.

 

갈등은 소통과 같은 절차적 문제가 아니다. 소통은 갈등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현실에는 집단 또는 계층 계급 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사회적 모순이 존재한다. 완전히 해결은 불가능하지만 이 다양한 집단들 간의 모순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잘 조율하고 타협해 가며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해 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이다. 갈등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처한 위치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이런 갈등을 직시하고 타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진보.

 

샤츠슈나이더 - “갈등이 민주주의의 엔진

 

3. 의사소통의 중요성

 

일방적인 증오의 표출이 진보의 길은 아니다. 그런 증오의 표출이 우리 편이 승리할 가능성을 높이거나 단결을 강화해 주는 것도 아니다. 물론 상대와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없애 버리거나 모욕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순간 그것은 민주주의 밖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상대방의 다양한 가치관들을 온전히 인정하고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세상을 바꿔 나가여 한다면, 우리의 행동방식에서도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훼손하거나 불편하게 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안에서는 각자의 윤리가 다르고 가치가 다르다. 오로지 더 나은 대안으로 설득하고, 서로 변화 발전해 나간다는 것이 유일한 싸움의 규칙이다. 따라서 가치관이 다를 때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면 소통의 기초는 자신이 믿는 윤리가 아니다. 상대의 가치에서도 충분히 통용되는 대안으로 설득하는 것이 민주주의적 소통이다.

 

4. 수단과 목적

 

마키아벨리 - “비도덕적 환경에서는 도덕적 의무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사실

최장집 - “오로지 수단 합리성만 다루는 정치이론은 상상할 수 없다.(중략)... 다만 어떤 행위가 정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정치적 불가피성의 제약이 잇고 그에 따른 행위의 규칙을 익혀야 함을 강조하려 했다.”

 

마키아벨리는 최초로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서 정치의 자율성을 말한 것이다. 알린스키 역시 수도원에서나 통하는 교리나 도덕으로 현실의 정치와 갈등을 말하는 것을 비판했다.

 

알린스키 - “실질적인 행동 과정에서는 개인적인 양심에 부합할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이라는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상황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알린스키는 이런 딜레마에 처했을 때 고뇌하는 것보다 과감하게 행동하는 쪽을 강조한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서, 고뇌한다는 미명하에 행동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범죄에 가까운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데 그 수단이 다소 비도덕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키아벨리 - “군주는 악덕을 말미암아 국가를 잃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을 만큼은 현명해야 하며, 설령 국가의 상실을 초래하지 않는 정도의 악덕이라 해도, 가급적 악덕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악덕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일을 계속해도 좋다. 사실 악덕 없이 국가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런 악덕으로 인해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에 개의치 않아야 할 것이다.”(군주론)

자크 마리탱 - “역사의 맥락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을 두려워함은 미덕이 아니라 미덕을 회피하는 방법이다.”

알린스키 - “수단과 목적의 윤리에 대한 사람의 관심은 이슈에 대한 그의 개인적 이해관계에 반비례한다.”

 

지식인들이 한 사회의 갈등에 대해서 중리적인 척하며 수단의 윤리성에 대해 평론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이 역시 그 지식인들이 해당 갈등과 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알린스키는 자신에게 윤리란 최대 다수에게 최선인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5. 자세와 태도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비장함, 단호한 결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 이데올로기 따위가 아니라 상상력, 호기심, 유머, 자유롭고 편견없는 마음, 정치적 상대성과 같은 것들이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을 때 부서지지 않고 불확실한 세계, 그리고 인생과 함께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외부의 이데올로기나 만병 통치약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근거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고정된 신념, 독단적 교리에 빠져 있는 사람은 이런 불확실성과 혼돈을 수용하기 힘들다.

 

평범한 우리들이 간신히 살아 내고 있는 순간순간에 어떤 거대한 정신과 모두가 동의해야만 하는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