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부
오랜 기간 걸려 읽었다. 역시 박상훈 선생님이다.
무엇이시민을 사납게 만드는가.
국민을 직접하는 호명하는 방식은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자율적 결사체를 통한 참여, 복수정당 통한 대표, 권력부서간 견제와 균형으로 상징되는 책임의 원리로 이루어지며,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더 깊고 넓게 표출하고 대표하고 책임지는 방법으로 갈등을 통합하고 불일치를 조정하는 다원체계를 지향하는 반면 비민주주의는 통치자와 국민으로 이원화된 정치구조로 불일치와 갈등을 부정하는 일원체계를 지향한다. 따라서 여야를 상대하는 정치가가 아닌 자신을 국민과 동일시하는 순간 대통령제의 비극은 시작되기에 국민이 아닌 정당, 의회와 함께 일하는 대통령이 민주적인 대통령이다.
좋은 정부가 좋은 시민을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타고나기를 정치적 동물”로서 정치의 역할 없이 목적있는 삶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인간이상이거나 인간 이하일 것이라고 했으며, 장자크루소는 “사나운 정부가 사나운 시민성을 낳는다” 고 하며 시민들을 서로 대화할 수 없도록 적대적 분열, 대립하게 만드는 정부를 피하고자 했던 것이 정치철학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이는 정치적 이견으로 사적공격은 많아졌으나 책임있는 공적 논쟁은 약화, 소멸 실종되고 있는 현실과도 맞닿는다. 하지만 사적 비난과 적대의 증가는 결과인 측면이 크기에 개개인의 의사소통행위의 제어방식이 아닌 차이와 적대, 갈등이 사회적으로 다루어지는 방식에 주목 공적 논쟁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더 긴급한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안전하고 평화롭게 다투면서 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민주적 방법론이다.
공적 영역의 축소, 사적 삶의 정치화는 전체주의적 방식이자 공적 공간을 텅 비게 만들고, 개인의 사적 삶에 국가가 무한으로 침탈할 수 있게 한다. 민주주의에서 최대로 정치화되어야 하는 곳은 공적 영역, 결사체가 더 많아지고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열정과 이익을 재조직한 복수의 정당들이 다툴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사적 삶을 위태롭게 하는 이슈들은 공적영역에서 일상은 좀 더 자유롭고 공정하고 평화롭고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