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현맨)

당권파는 억울하다!

현맨 2012. 5. 8. 02:07

0. 이제는 남의 당이 되어버린 특정 정당에 대하여 왈가왈부 하지 않으려 했다. 

너무 아프니까, 그리고 너무 아파서 탈당을 택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요즘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고, 당내 내분이 더이상 봉합될 수 없을 정도로 확전되면서, 내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청춘을 바쳐온 모든 세월들이 시간이 갈수록 쓰레기더미처럼 느껴지는 현실을 보고 무언가 찌끄리고 싶었다. (개인 블로그 이니 내마음이다. 더군다나 이 글은 무슨 그 당에 대한 과학적 분석 글도 아니니까.) 물론 내 과거가 쓰레기였다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정치적 운명이니 따위는 나의 고려 대상도 아니고, 내가 살아온 청춘에 대한 평가가 박해도 난 상관없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찌끄려보고 싶은 마음. 그것은 앙금일 수도 있고, 답답함 일수도 있고, 진보와 운동에 대한 나름의 견해일 수도 있고, 뭐 그렇다. 그리고 이 글이 어떻게 전개될지지금은 모르겠다.



1. 당권파는 억울하다. 인정한다. 

그렇다. 당권파는 억울하다. 신기하게도 이제 모든 국민들이 코딱지 만한 정당의 계파질서에 대해서 다 안다. 원주동부도 아닌 경기동부가 검색어 1위를 얼마나 했던가. 그리고 이제는 저들도 부정하지 않는 눈치다. 부정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건 너무 치사하잖아. 하여튼 당권파는 억울하다고 난리다. 맞다. 억울할 수 밖에 없다. 부실선거였던, 부정선거였던, 혹은 그 둘다가 아니였던간에 김재연, 이석기는 그들의 압도적 조직력으로 당선이 되었을 테니까. 그런데 그들이 주장하는 당내 관행, 혹은 정말 먼지 한톨만한 일로 인해, 그것도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닌데 자신들의 후보가 사퇴압력을 받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그 마음 진정 이해한다. 


여기에 그들이 주장하듯 당권파를 몰아내기 위한 물타기도 존재한다고 본다. 그래 그것도 인정하자. 물타기가 존재한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사그라들 기미보다는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더 확장되고 있는 형국이다. 수습이 가능할까. 글쎄 이미 그 수준을 넘어선듯 보인다. 여하튼 당권파들에게는 지금의 형국이 당황스러울테고, 심지어 너무나 억울하고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2. 모욕감

내가 놀란 것은 이 번 일이 터지면서 분출된 당권파에 대한 반감이 정말 어마어마 하다는 거다. 조중동을 비롯한 수구언론의 공격과 초딩 수준의 키보드 워리어들은 논외로 하고, 소위 당권파를 제외한 여론, 대다수의 정파들, 운동가, 시민사회, 학계, 진보언론을 망라하고 당권파의 문제들을 쏟아내고 있다. 저들의 표현에 따르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 솔직히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다렸을 것이다. 


여기에 그들만이 모르는 혹은 외면하는 상당히 보편적인 감성이 숨어있다. 다수의 조직력으로 여러 대중조직과 당을 장악하고, 자기 내부 조직의 결정사항에 따라 그 대중조직과 당을 운영하면서, 공식회의는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비상식적인 80년대식 시대인식과 전략, 감수성으로 무장.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려운 결정과 사업방식을 내려먹이지만, 그것은 다수이기 때문에 소위 "결정사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물론 모든 사안이 그런건 아니겠지)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토를달면, 결정사항을 역행하는 비조직적인 인간, 종파분자, 분파분자로, 소위 "실천"하지 않으면서 말만 많은 투덜쟁이로, 정세 인식이 떨어지고, 학습하지 않는 게으른 구성원으로, 언젠간 역사속에서 평가받아야 할 처지로 전락한다.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던가? 그들에 의해 종파/분파주의자로, 비조직적이고, 실천하지 않는 투덜쟁이에 게으르고, 역사속에서 평가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전락한 수 많은  사람들과 조직들이 느낀 모욕감은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하나. 패권과 조직 실체에 대한 증거를 대라고 한다. 난 지금의 그들에 대한 이 전방위적 비판이 바로 그 살아 있는 증거라고 말하고 싶다. 수 많은 시간, 수 많은 사안에 대하여 순간순간 들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무력감과 굴욕, 모욕감을 그들만 모르고 있다. 


솔직히 이 문제가 터졌을 때 단 한 사람이라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그건 나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여전히 100% 예상되는 사람들의 입에서, 100% 예상되는 똑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억울하고, 모욕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 아마 그들에겐 처음일거다. 하지만, 그동안 그들에게 억울함과 모욕감을 느꼈던 수 많은 사람들을 이번 기회에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실체를 대라고? 정말? 왠만한 이바닥 사람들은 다 아는거 아냐? 너무 치사하잖아.)

 


3. 피아구분

피아 구분을 하라고 한다. 조중동과 수구보수세력들의 선동에 넘어가고 있다고? 이것도 그들만의 선민의식아닌가? 그 많은 동지들이, 대중들이 바보로 보이나? 솔직히 이 주장도 선거시기 북풍만큼이나 진부하지 않은가. 피아구분을 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다. 좋은 말을 해야만 아군이고, 비판을 하면 적인가?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 부터 다양한 견해와 대중들의 감수성을 체득해야 할 시기, 조직의 관점을 위한 학습을 되풀이하고, 자기조직이 아니면 벌써부터 누구는 무슨주의자네, 누구는 뭐가 부족하네 하며 편식을 일삼는 데 피아구분이 되겠는가. 경향이 한마디하면 경향을 물어뜯고, 한겨레가 한마디하면 한겨레 물어뜯고, 고소하고 시위하고(아주 쪽팔린다. 정말), 새파란 어린 아이 입에서 모교수나 노 활동가의 한마디 비판에 조직적 관점이 어떻네, 정세 안목이 어떻네 부터 나오는 이 불편한 진실. 


지난 민주노동당 대회에서 권영길 의원(호불호를 떠나)에게 일단의 학생들이 저 영감 이제 노망들었다고 수근대던 얘기를 듣고 참 끝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그 간부급 학생의 얼굴이 아직도 내 머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이명박 정부와 싸워야 할 시기에 종파분자들이 투쟁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발목을 잡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은 발목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다.



4. 우린 다르다?

그러나, 사실 더욱 불행한 것은 이 문제가 비단 소위 당권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위 이 바닥 어느곳에 가도 똑같다. 소위 조직운동을 한다는 사람치고 지금의 문제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가 있나? 이 대목이 소위 당권파의 억울함을 이해하는 나의 키워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여기에 들어 맞는 말이다. 양비론이냐는 비판을 해도 좋다. 다른 어떤 조직이 당권파가 되고, 다수파가 되더라도 지금의 모습이라면 변할 것이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당권파나 소수파나 조직운영과 조직화 방도, 정세를 바라보는 시각, 사업방식, 대중적 감수성에서 큰 차이가 있는가. 단지 쪽수의 차이고, 그 정도의 양적 차이일뿐 질적으로 다름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더 열심히 조직한 죄라고 느끼는 다수파, 당권파가 억울하고, 당당할 수 밖에. 오히려 소수이기에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무원칙하게 기회주의적 행보를 보인 일단의 무리들이 더 얄밉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에 소위 당권파(이정희, 김재연, 이석기)만의 일방적 사퇴를 요구했던 것에 대해서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참으로 치사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사람들은 정파 운동의 긍정성을 얘기하지만, 난 여지껏 단 한번도 정파운동의 긍정성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상대적으로 조직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 내가 이래서 탈당한 것 같다.)

 


5. 상식적으로 살자.

먼지 한 톨이던, 돌맹이가 가득 들어있었건 간에 선거 과정에서 부정, 부실이 발견되었다. 선거과정에서 부실이 발견되고, 부정이 발견되었다면 그 선거의 생명력은 이미 끝난 것이 상식이다. 그것이 부정이었건 부실이었건 말이다. 물론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는 철저하고 원칙적으로 보강해야 하며, 책임소재가 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배수진을 치고, 니탓이네, 내탓이네를 가를때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대중의 요구라며, 진보정당의 독자성과 원칙마저 흔들려 했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여론이 다 맞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이중적 혼란을 만들지는 말자. 이 과정에서 마녀사냥되고 있는 것은 당신들의 명예가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청춘을 바쳤던 세월이며, 인류가 피와 땀을 바치며 하나하나 쌓아올린 진보의 거대한 역사다.

 

당권파는 억울하다. 그래 그럴수 있다. 하지만, 단 한번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그들에게 손해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