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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 곳곳의 어머님들의 모습.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해맑은.
웃으시고, 맞서시고, 살아내시는 어머님들의 모습.





[작가 작업노트]
어렸을 적 여름과 겨울 방학을 맞이하면 항상 외갓집을 찾아가곤 했다. 가는 길이 먼 탓에 차멀미의 고통이 만만치 않았지만 곧 외할머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입을 앙 다물어가며 버티기도 했다.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기도 전에 “할머니~”하고 소리를 지르면 외할머니는 여지없이 버선발 째로 양 팔을 벌리며 뛰어 나오셨다. 초가집 너른 마당을 달려 나오시던 당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비녀로 머리를 곱게 머리를 추스르고 항상 한복을 입으셨던 외할머니는 농삿일에 거칠어진 손바닥으로 우리 형제들의 얼굴을 일일이 매만지며 한참을 껴안아 주셨다. 다시 손을 잡아끌고 툇마루에 올라가시면 벽장에서 <해태 맛동산> 몇 봉지를 꺼내 우리의 입을 채워주셨고 직접 키운 수박과 참외를 연달아 내놓기도 하셨다. 거기에 포도밭 한가운데의 원두막에 올라 외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잠들던 달콤한 기억도 아련하기 그지없다.

 

무엇보다 당신의 ‘고소’했던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외할머니의 몸에서 나는 들기름 내음.

맛동산 과자보다 더 달콤했던 그 내음은 한없이 따사롭던 당신의 손길과 더불어 여전히 콧잔등을 시릿하게 만든다. 외할머니는 매년 가을 들녘에서 거둔 들깨를 직접 빻고 짜서 큰 대줏병에 넣어 장에 내다 팔곤 하셨다. 열 살 남짓 되었을 즈음 당신과 함께 읍내 5일장을 돌던 날은 유난히 가을햇살이 따가웠던 기억이다. 호기심과 도와드리고 싶다는 생각에 따라 나선 그날, 장터 여기저기 국밥집을 찾아다니며 흥정을 벌이는 당신의 몸에서 유난히 고소한 내음이 가득했다. 일부러 코를 킁킁거리며 맡아보기도 했고 이것이 ‘할머니 냄새’라고 속으로 단정하기도 했다. 내 어릴 적부터 우리 외할머니는 언제나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칠십 여든 되시던 해, 외할머니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오래도록 내게 ‘아줌마’의 형상이었던 나의 ‘어머니’는 올해 칠십 여든이 되셨다. 언젠가 우연한 일로 나의 ‘아줌마’를 향해 누군가 할머니라고 불렀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불쾌해 했던 적이 실제 있었다. 오래된 얘기가 아니다. 내 어머니가 할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외할머니에 대한 따사롭던 기억과는 다소 다르게 가슴이 먹먹해지는 감정을 동반했다.

외할머니는 1년에 겨우 한두 번 남짓 뵐 수밖에 없기에 매번 그리움을 채우는 느낌이었다면 내 어머니의 경우는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같이 했기에 편안함과 아련한 연민이 같이 섞여 있었다. 마냥 좋은 기억만 있는 외할머니와는 다르게 내 어머니에 대한 그것은 그렇게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치마폭에 매달리던 코흘리개 시절 이후 내 기억 속 어머니의 삶은 주린 배를 채워주는 ‘엄마’의 따사로움과 더불어 실로 고단하기만 한 삶의 단면들이 이분법으로 얽혀 있다. 다섯 남매의 학업과 가족생계에 대한 비용은 순전히 어머니의 과도한 노동력에 의해 대부분 해결되었다. 아무리 바빠도 끼니를 거르게 하시거나 남들 보기에 남루하지 않을 만큼 옷을 입혀주셨다. 자식에 대한 열정 하나가 당신의 고단했을 하루들을 잠재우는 믿음이자 받아들인 현실이었다. 함께 놀러갔던 기억보다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만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들이 헤아릴 수없이 많은 형상으로 익숙하게 남아있으니 일일이 거론할 생각은 없다. 자식 잘 되는 꼴 하나만을 바란 채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 가족의 삶 아래로 낮추시고는 일평생을 숨죽이며 그리 살아오셨다. 이제는 좀 당신의 삶을 찾아보시라고, 즐길꺼리도 좀 찾아 나서시라고 괜스레 들쑤셔본 적도 있었다. 오로지 자식만을 위하는 희생의 삶을 무조건 받기만 했던 것에 대한 부질없는 반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내 자신을 향한 투정이기도 했다. 어설픈 상념에 젖은 시야가 뿌연 안개처럼 희미해질 때도 종종 있었다. 기억과 현실 속 두 ‘여인’에 대한 다르면서도 같은 감정은 바깥을 향한 걸음에도 그대로 따라 나갔다.

 

국내외 여기저기를, 인연이 닿는 걸음대로 길거나 때론 스치듯 머물렀다. 취재와 작업의 여정들 사이, 본래의 목적을 이루어내는 것과는 별개로 어느 누군가의 할머니이자 어머니들과도 꽤 많은 대면의 시간들이 있었다. 틈이 나면 내 <두 여인>을 바라보듯이 그들을 향해 다가섰다. 가까이 앉아 숨을 교환하면서 나직하게 들려오는 소리들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목을 타고 흐르는 음성에 살아온 세월이 실려오고, 외양이 얹혀진 몸짓에 질곡스런 인생이 묻어나왔다. 낯선 이방인의 섣부른 걸음 앞에 그들은, 어머니들은 나를 품어주었고 나는 마냥 좋기만 했다.

 

세상 걸음에서 만난 어느 누군가의 어머니들을 나는, 내 자신과 동일시된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래서 함께 아프거나 기쁘기도 하고 웃거나 울기도 하며 서럽거나 고달프기도 하다.

가벼이 스칠 일도 겉모습만 취하여 거두어갈 일 없이 그저 옆 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을 때 나는, 내 어머니이자 내 할머니인 그들의 숨소리를 듣는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오늘 하루>는 쉼 없이 오고가기를 반복하고 기억은 남아 하나의 안식처가 되어 머문다. 사람 사이 경계와 구분을 넘어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의 어머니들이 있고 그들이 내게 준 숨소리는 여전히 살아 요동치고 있다. 그것도 이렇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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