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먹먹함이 가슴을 옥죈다. 시대를 걸쳐 저자의 삶과 고민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편지들. 하지만 저자의 삶과는 별개로 자유와 평등을 꿈꾸며 인생을 걸었던 많은 이들의 궤적이 어찌 이리 허망한지. 누가 시대를 대변한다 오만을 부리고 누가 시대를 청산하겠다고 감히 이야기하는지. 조금은 가슴이 뜨거워지고 비할바 없지만 지난 시간과 얼굴이 그리워지는 문장들. ”형은 도저히 저를 이해하기 힘들다 하셨지만, 저도 제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해는 늘 뒤늦게 따라오더군요. 저는 살아보며 삶을 배우는 중이지요.“ ”삶은 잔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즐길수 있는 잔치를 여는 것이 명상이고.“ ”젊은 날을 원 없이 보냈다. 오늘은 어제 내린 비로 꽃이 핀 산길을 호젓이 걸을 수 있어 좋다.“ 정소영 ..
“당시에는 아무것도 무의미하지 않았다. 모든 행위가 유의미했으며 의미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뜻했고, 그것은 영원불변의 법칙이 존재함을 뜻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영원했다.“ “윌리는 철학자의 나약함에 실망했다. 행동해야 할 때와 생각해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변절자의 특징이다.“ “세계를 이해하려들면 믿음은 깨지기 마련이다. 세계를 바꾸려는 사람만이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 “꼭두각씨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꼭두각시가 되는 순간 너의 주인은 너에게 관심을 잃을 테니,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정지돈 지음 중에서
저자(박상훈)의 말과 글을 모두 좋아하지만, 이 책을 가장 좋아한다. 정치가 어지러워 냉소하게 되고, 다 싫다고 느껴질때 늘 이 책을 꺼내든다. 이 책이 2017년에 나와 벌써 다섯번쯤 펼쳐 읽었으니 대충 매년 한번씩은 본 듯하다. 볼때마다 보이는 것이 새롭고 다르다. 정치가 답답한가? 변화를 냉소하는가?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누구도 인간의 완전함을 전제할 권리는 없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노력하고 타인에게 배우려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없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아프고 마음은 지옥 같다. 그런 삶의 비극성과 싸우면서 좀 더 나은 삶과 사회를 개척하는 사람들은 어두운 사람들이 아니라 밝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늘 주변을 웃게 만든다. 화만 내는 사람을 만나면 삶은 더욱 ..
개인이 어떻게 극단주의에 빠져드는지. 그리고 극단주의가 어떻게 시회적으로 확장되고 퍼지는지. 볼수록 화나고 답답하지만 끝까지 읽어내려가지 않을수 없는. “알린스키는 오랜동안 우파의 미움을 받았으나 대안우파 활동가들이 어쩌면 현대의 좌파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의 전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극단주의의 새시대에 접어들었다. 한때는 주변부에 머물던 것이 이제는 주류가 되었다.“ “페이스북의 가장 큰 모순중 하나는 친구가 많을수록 접하는 컨텐츠의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문일이다. 그러나 집단,당파, 민족, 시대에는 늘 있는 일이다. 니체 율리아 에브너 지음을 읽고
아련하고 또 아련한 기억. 누군가는 상처를 또 누군가는 즐거웠던 추억으로만 채색하기도. 작가의 삶이 문득 궁금해지는. “사랑하는 게 왜 좋고 기쁘지가 않아? 사랑해서 얻는 게 왜 이런 악몽이야?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안 힘들어도 되는데, 미워하면 되는데, 왜 우린 사랑을 하고 있어? 왜 이따위 사랑을 하고 있냐고. 눈물도 안 나오고 숨도 못 쉬겠는, 왜 이런, 이런 사랑을 하냐고” “누구나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는 최소한 받아들일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그 처참한 비열함이라든가 차디찬 무심함을 어느 정도 가공하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렇게 했다” “내가 손쓸 수 없는 까마득한 시공에서 기이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내가 지금의 나로서는 결코 원한 적 없는 방식으로, 원하기는커녕 가장 두려워해 마지않는..